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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서를 한 달에 한 번 썼습니다. 월말이 다가오면 ‘내가 다시 재계약이 될까’ 노심초사하며 밤잠 설칩니다. … 월말, 라인 종례 시간에 해고 명단이 들리는 그 순간. 심장이 뛰고 다른 동료의 이름이 불릴 때 ‘나는 잘리지 않아 다행’임을 느끼는 순간. 인간이 아닌 정글 속에 내쳐진 동물 같은 존재가 된 자신과 서로를 볼 때의 그 비참함. 그렇게 60건의 근로계약서를 쓰며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결국 저도 이름이 불리고 잘려서 회사를 나왔습니다. 저는 이 회사의 적금통장 추천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같은 라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일을 했는데 월급은 두 배 차이가 났습니다. 설 추석마저 인간 취급받지 못하는 현실의 쓰라림, 경험해 보신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이 법의 통과를 반대하는 국민의힘은 아침9시께부터 ‘노란봉투법 반대 중기청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그러자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과 민주노총도 국회 앞에서 법 통과 촉구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상정된 가운데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진보당 회의실에서 열린 ‘노 LTV·DTI 조법 2·3조 개정 촉구하는 노동자의 필리버스터’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인 정 의원이 먼저 말머리를 열었다. 그는 IMF 이후 ‘현대판 신분제’와 다름없는 비정규직 차별이 시작되었다며 “IMF 이전으로 모든 고용 구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변화된 노동시장 구조에 맞게 3000만원 대출 노동자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헌법상 보장하는 노동 3권은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 아니냐”고 했다. 이어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그동안 이윤만 챙기고 그 노동자를 책임지진 않았던 진짜 사장에게 단체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법”이며 “정리해고 등으로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릴 때 투쟁할 수 있는 기금승인 권리, 그러다 과도한 손배가압류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이라고 했다.
근로조건 원청이 결정하는데 왜 대화는 못하나
남희정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장도 원청이 노동조건을 결정하면서 하청 노조와 교섭하지 않는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남 본부장은 “본부가 2022년 65일 동안 파업하며 한강대교 선전전, 단식, 본사 점거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봤다. 택배를 레일로 내려보내는 건 CJ인데 대화는 대리점하고만 하라 하니 ‘원청과 대화 좀 하자’고 한 거였다. 그런데 결국 못하고 몇 가지 부당한 계약사항만 대리점연합회와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택배노조는 그 때부터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 법 개정 투쟁에 돌입했다.
남 본부장은 원청이 노동조건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우리의 노동조건과 임금을 결정하는 건 CJ대한통운인데 허울뿐인 대리점과 교섭을 하라고만 하니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어요. 택배 노동자들은 건강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다 시간 싸움입니다. 그런데 (택배) 하차와 분류가 늦어지면 배송 출발 시간이 늦어집니다. 이런 문제를 누가 결정하냐? 원청인 CJ 대한통운이 결정하는 거예요. … 경총은 나라가 망할 것처럼 반대하지만 정말 단언컨대 그때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 권리가 보장됐다면 저희는 파업 안 했을 겁니다. 어떻게 교섭을 하고 무슨 협상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했을 겁니다. 노조법이 개정되면 뭐 파업이 난무하고 나라가 망한다고요. 아직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경영계의 인식을 보는 듯해서 정말 분노스럽고요. 노조법이 반드시 그대로 통과돼서 하청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빛이 만들어지기를 정말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2013년 2월 회사로부터 158억원 손해배상소송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의 장례식 모습. 그의 동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추모사를 읽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류우종 기자


두 사람의 지적대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을 바로잡으려 파업에 나섰다가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과 판례가 ‘사용자 ’를 단일 사업장으로만 좁게 해석한 탓에 원청 사용자는 아무리 많은 다단계 하도급을 써도 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다 . 이 때문에 직접고용과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파업한 하청 노조는 ‘불법 파업 ’ 낙인을 받고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곤 했다. 현대자동차가 하청 노조에,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에, 현대중공업에 하청 노조에, 하이트진로가 화물기사 노조에,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하청 노조에 손배소를 걸었다.
노란봉투법은 정리해고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불법파업으로 낙인찍는 현실에서도 비롯됐다. 2002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구조조정 반대 파업으로 65억 손배소를 당해 목숨 끊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옥쇄파업을 벌인 대가로 총 100억원에 가까운 손배소를 당하고 월급을 가압류당했다. 경찰과 회사가 노동자 개개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16년이 흐른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최강서씨가 정리해고 반대 투쟁으로 158억원 손배소를 당해 생을 마감했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노란봉투법은 이런 죽음을 최소한 막아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원청이 하청 및 특수고용직 노조와 대화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한다. 합법 파업의 범위를 ‘노동처우’에 그치지 않고 노동처우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진의 주요 결정’으로 넓혔다. 노조와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도 따로 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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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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