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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요즘 줄 그리고 안은 뿐이다. 에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후보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치의 무대에서 표심을 좌우하는 요소로 흔히 이념, 정책, 이해관계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틀에서 벗어나 인간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감정이 어떻게 거대한 집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왜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 정당에 열광하는지, 또 오랜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노동자들은 왜 공화당으로 돌아섰는지. 이 난해한 정치 역학에는 경제적 논리나 이념이 아니라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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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출간된 <도둑맞은 자부심>은 앨리 러셀 혹실드 미국 UC버클리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썼다. <감정 노동>, <자기 땅의 이방인들> 등의 저서로도 알려진 그는 감정사회학의 선구자로 사회학계에 족적을 남겼다. 이번 신간 역시 미국 사회에서 새롭게 떠오른 우파의 감정적 기반을 해부한 사회학적 기록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CT&T
이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오늘날 미국이 직면한 정치적 분열의 근원을 추적하기 위해 저자가 향한 곳은 켄터키주 파이크빌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백인 비율이 가장 높은 이 지역은 한때 석탄산업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우리가 미국 전역에 불을 밝혔다’는 자부심은 지역 공동체의 자산이었다. 그러나 석탄 채굴량이 줄어들고 일자리가 사라지자 상황알라딘설명
은 급변했다. 한때 ‘벤츠를 몰고 다니는 부자 동네’였던 이 지역은 이제 미국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선거구가 됐고, 자부심은 힘없이 꺾였다. 대형 제약회사가 불러온 오피오이드 위기까지 덮치면서 주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마약 중독,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수치심에 빠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게 됐고, 모든 고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미국 사회의 분주가검색
위기는 이 상처를 더 깊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수치심이 우파 정치인들에 의해 새로운 정치적 서사로 재구성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민주당, 이민자, 소수자들이 당신의 자부심을 빼앗아 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이 그들의 틈을 파고들며 내놓은 이런 메시지를 저자는 ‘도둑맞은 자부심’의 서사로 규정한신천지무료
다. 이 서사는 우파의 ‘깊은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줄을 서서 아메리칸드림을 기다리던 백인 남성이 앞에서 새치기하는 소수자들을 보며 느끼는 분노.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인 상황에서 늦게 온 ‘새치기꾼’이 좌파 정치인의 묵인하에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서사에 격렬히 공명하게 된다.
‘석탄산업을 되살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파이크빌 주민들이 그를 지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치기꾼을 거칠게 몰아내는 ‘불량배’였던 것이다. 그들의 상실과 분노를 트럼프 대통령은 제대로 표현해 줬고,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인식한 것이다.
저자의 연구가 특별한 이유는 통계 분석이나 선거 데이터를 통해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파이크빌 곳곳을 누비며 주민과 대화했다. 교회와 식당, 트레일러 공원, 마약 재활 모임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분노와 슬픔, 잃어버린 자존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인간적인 아픔과 회복의 갈망에 귀를 기울이며 그대로 기록하는 태도가 돋보인다. 분열의 언어와 정파적 대립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이야기를 사례로 들고 있지만 미국 정치의 특수성에만 국한해 볼 수 없다. 자부심과 수치심을 자극하고 ‘공정’과 ‘역차별’의 프레임을 통해 분열을 조장하는 감정의 정치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광경이다. 정치의 전선은 이념이나 정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때로는 ‘나는 존중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투표의 무게를 결정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